인터넷이 일반화되고 특히,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카드나 엽서처럼 손으로 뭔가를 써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듯하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카드를 사서 정성 들여 글을 써서 보내는 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행사였는데, 이제는 회사에서조차 이미지로 만들어서 보내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감히 펜 마니아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문구류 그중에서도 펜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 펜, 저 펜 갖고 싶고 써보고 싶어 한다.
외국에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꼭 문구점을 찾아서 들르곤 하는데, 요즘은 해외에서 수입되는 문구류가 많다 보니 웬만한 펜이나 문구류는 국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무튼, 문구류를 좋아하다 보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바로 사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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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문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구 대부분이 근대에 들어와서 발명되고 사용된 것이어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아이디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서 시장에 내보이고, 그중 살아남은 문구가 역사가 되는 일련의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직접 사용했었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와서 흥미로운데, 그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파커51이 처음 나올 시절에는 잘 마르는 잉크를 사용하다 보니, 종이에 쓴 글씨가 번지지 않는 장점이 있는 대신에 만년필의 닙(보통 펜촉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말라서 잉크가 안 나오는 불편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커51은 보통 닙 부분 전체가 드러나 있는 일반적인 만년필과 달리 닙이 거의 숨겨져 있는 대표적인 후드닙 만년필이다.
파커51은 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이었는데, 무광의 은색 뚜껑에 화살촉 모양의 앞모습과 화살의 깃 모양의 뒷부분이 너무나 고급스러웠고, 쥐고 썼을 때 부드럽고 써지는 느낌과 잉크가 살짝 종이에 번진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언젠가 나만의 파커 만년필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파커 만년필은 처음 보았을 때의 멋진 모습이 아니어서 아쉽다.
처음 일본에서 이 펜을 써보았을 때는 도대체 어떤 원리로 이게 가능한지 너무 궁금했는데, Pilot社에서 열에 반응하는 잉크를 개발했는데, 이 잉크는 섭씨 65℃ 이상이 되면 잉크의 색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Frixion펜은 뒤에 붙어 있는 지우개처럼 보이는 특수 고무로 지우고 싶은 부분을 지울 때 생기는 마찰열로 잉크의 색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예전에 사용하던 볼펜지우개와 달리 연필로 쓴 글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진다.
요즘은 해외 여행 가면 기념품으로 대부분 초콜릿 같은 먹을 것을 사 와서 나눠주는데, 어렸을 때만 해도 쉽게 가기 힘든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 아버지가 사다 주신 플로팅 펜은 너무나 부러웠다.
주로 여행지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움직이는 형태인데, 펜을 기울여야 움직이는 단순한 동작인데도, 외국의 이국적인 상징물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요즘은 잘 보이지도 않지만, 잘 찾지도 않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제는 우리에게 잊혀 가는 연필이나 지우개, 클립 등과 같은 문구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단지 외국의 어떤 사람의 경험이고 문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내가 사용해 보았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번쯤 만년필 잉크를 채워서 메모를 남겨보고, 연필을 깎아서 뭔가를 써내려가다 보면 내 속에 생각들이 정리되고 가다듬어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작성하게 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받아쓰기를 하고 손글씨 연습을 한다. 교육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손으로 뭔가를 쥐고 글씨를 쓴다는 것은 지식 활동의 기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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