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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나는 대통령을 두 번 잃지 않을 것이다.

by 마루날 2017.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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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더는 정치적인 글을 올릴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한겨레 안수찬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정치적인 글을 올릴 것 같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 "덤벼라 문빠들" 논란 후 "술 마시고...밑바닥 드러냈다"


나는 재수해서 91학번이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신문으로 지켜보았고(조선일보의 6/29선언 이후의 논조가 잊혀지지 않는다), 전교조 사태(써클 지도 선생님이 형사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았다.)를 고등학교 3학년때 겪었다. 군대 다녀와서 대학교 4학년때 IMF가 터진 세대이다. 이것은 안수찬 기자도 비슷하리라.


대학에 입학해서는 공대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시위나 집회에 대해서 경험이 많지 않았는데, 91년 4월에 강경대 군이 시위 중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 분신이 잇따르면서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위나 집회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았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에서 박홍과 김지하의 막말과 유서 대필사건 등의 조작으로 공안 정국이 만들어졌었고 당시 학생운동을 이끌던 전대협에 엄청난 탄압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안수찬 편집장이 이야기하는 버텨낸 시기라고 하면, 아마도 강경대 군의 사망 이후 몇 년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어지는 분신이 무섭기도 했지만, X세대라 불리는 우리에게는 PC 통신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었고 92년에는 서태지가 데뷔하여 세상을 바꾸었고 93년에는 학생운동의 대명사였던 전대협이 해체하고 한총련이 출범하면서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이어지던 학생운동의 힘이 많이 없어졌던 기억이 난다.

사실 대학입학 하자마자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은 잘 이해도 되지 않았고 무서웠기에 그 당시 앞서던 친구들이나 선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부분이 적어도 진보적 가치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보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러한 생각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도록 후원금이나 각종 게시판에 퍼 나르기 등을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정권 내내 여러 기득권 세력들에게 흔들렸던 노무현 대통령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퇴임 후 봉하마을 내려가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침햇발] 비굴이냐, 고통이냐 / 김종구


등록 :2009-04-30 18:54수정 :2009-04-30 19:31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2674.html


지금 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쓰고 있다. ‘잔인한 4월’의 마지막날, 추락하는 꽃잎은 초라하고 비장하다. 노 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떤 상념이 스치고 지나갈까. 뒤늦은 자책과 회한인가, 아니면 분노와 결연한 의지인가. 그의 얼굴 표정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앞날과 관련해 주목되는 여론의 흐름 하나는 불기소론이다. 법치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감옥에 보내지 말자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호소는 눈물겹다. 주된 근거는 국가의 위신이다. 나라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국가적 차원의 모욕감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국가의 위신 추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부에 불편한 글 좀 인터넷에 썼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구속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 것만할까. 서울 한복판에서의 토끼몰이식 철거민 진압으로 죄 없는 목숨들이 죽어나간 사건보다 나라의 체면이 더 깎일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사실은 모두 부질없는 말들이다.

그럴 가능성이 없겠지만, 혹시 노 전 대통령이 불기소론자들의 아량과 은총에 감읍해 용기백배한다면 정말로 ‘바보’다. 맘껏 희롱하고 조롱한 뒤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잔인한 처사는 없다.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놓고 목숨만 살려놓는 것이야말로 ‘적’에게 가하는 최대의 복수임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노 전 대통령의 가슴은 지금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수사에는 그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권력을 기쁘게 하려는 수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있었다. 검찰은 본래 그러하다. 죽은 권력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요, 살아 있는 권력에는 순한 양의 속성은 세세연년 변치 않는다. 자신들의 떡값 의혹에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일반 하급공무원이 기백만원 받은 봉투에는 추상 같은 게 검찰이다. 그러니 너무 서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런 검찰을 대통령 재임 때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원죄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매정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비굴이냐, 고통이냐의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겠지만 지금의 운명을 긍정하고 고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기소를 면한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무죄가 확인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와 박연차씨의 돈거래를 상부상조의 미담으로 여길 사람은 더욱 없어 보인다.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진술할 필요야 없지만,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워 구차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봉하마을 집 주변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고 ‘위리안치’되는 신세나, 옥중에 갇히는 생활이나 오십보백보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사실 결혼하고 나서 처음 한 일이 한겨레 신문 구독이었다. 직업 군인 출신이셨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두던 신문이었지만, 이 사설을 본 이후로 더는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이 사설이 있고 채 한 달이 안 되어 그분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이니 민족해방(NL)이니 민중민주(PD)니 잘 알지도 못했지만, 젊을 때 민주화 운동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이나 소위 진보 언론이라 불렀던 한겨레와 경향이 노무현 대통령 정권 내내 보여주었던 모습(적어도 나는 한겨레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었다!!)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노태우 못지않은 일방적인 정권 운영을 했던 박근혜의 힘이 30% 콘크리트 지지층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나에게 조선·중앙·동아일보든 한겨레신문·경향신문·오마이뉴스든지 내가 뽑은 대통령을 아무리 흔들고 비판해도 꿋꿋하게 지지할 것이다.

아직도 언론이나 검찰, 정치인 등은 국민을 개, 돼지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87년 민주 항쟁 시절처럼 정보의 비대칭 시대가 아니다. 물론 일부 제한된 정보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강력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은 개, 돼지 취급하지 말라. 


한겨레는 문빠 덤비라고 하고, 오마이뉴스는 김씨라고 하고, 경향은 밥을 퍼 먹는다고 하는 텍스트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신들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 뒤에 흐르는 컨텍스트가 읽혀지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나 중립적인 시각, 비판적인 지지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동안에는 콘크리트 지지를 할 생각이다. 한 명의 대통령을 황망하게 보내버리고, 그 친구가 어렵게 대통령이 되었는데 빚을 갚는 마음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처럼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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