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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인간의 흑역사

by 마루날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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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와 같이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월 E>이다.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구에 남겨진 청소 로봇 월-E와 지구를 떠난 인류가 살고 있던 우주선 액시엄에서 지구에 다시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 조사하러 온 로봇 이브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지금처럼 지구를 아끼고 보호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만큼 우리 인류가 지구 입장에서는 매우 해롭게 파괴적인 존재로 생각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지구 상에서 존재하면서 자연이나 사회에 저질러왔던 수많은 실수와 오류에 대한 책이다.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문구가 책 표지에 적혀있는데,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딱 맞는 문구이다.

 

 

왜 인간은 이러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인간의 뇌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인간의 머리는 교향곡을 작곡하고 도시를 계획하고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내지만, 동시에 누가 봐도 어이없는 최악의 결정을 내리고 한심한 행동을 하게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뇌가 요령과 땜질과 편법을 모아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확증 편향이라는 자기 생각을 확증하는 정보만 찾고 받아들이는 답답한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생각이나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잘못된 것임을 시사하는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 매체를 통해서만 뉴스를 보려는 경향이나 음모론자를 절대 설득할 수 없는 이유가 자기의 믿음에 부합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다른 증거는 외면하는 확증 편향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잘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엄청나게 과대평가한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하는 인지 편향 현상으로 인해 대부분의 흑역사가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또는 ' 무식하면 무식한 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더닝 크루거 효과로 인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흑역사를 각각 환경, 건강, 지도자, 대중, 전쟁 등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인상 깊은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 중부 평원을 무분별하게 개간하면서 일어난 더스트 볼(Dust Bowl)은 실제로 발생하면 해를 완전히 가리고 1 ~ 2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쌓였다고 한다.

 

출처 : https://www.forbes.com/sites/davidrvetter/2020/05/18/greenhouse-gases-could-bring-1930s-dust-bowl-back-to-america/#5b0e882d4bf5

 

또한,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폐수를 제대로된 정화처리 없이 강에 버렸는데, 어쩌다가 강물에 불이 붙어버린 쿠야호가강 화재는 불과 70년 전인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세계 최고 선진국에서 예전에 일어난 일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것은 모두 인간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cuyahoga-river-caught-fire-least-dozen-times-no-one-cared-until-1969-180972444/

 

단지 사냥감으로 삼기 위해 24마리의 토끼를 호주에 풀어놓았다가, 온 나라의 초목을 싹쓸이 하면서 많은 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고 흙을 붙들어주던 풀뿌리가 사라지면서 토양이 허물어지고 먹이 경쟁이 심해지면서 다른 동물마저 멸종 위기에 처하도록 만든 것이 인간이다. 

 

출처 : https://www.anu.edu.au/news/all-news/life-sentences-australias-rabbits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저지른 흑역사 중에서 가장 추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식민지 역사라고 생각된다. 아프리카 노예무역, 강제수용소 수감, 일본의 위안부,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실시한 엥코미엔다 제도(식민지 정복자들에게 원주민을 개인 재산처럼 나눠주었던 제도) 등 식민 제국의 만행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또한, 식민 지배로 인해서 망가진 수많은 문화와 말살된 역사 그리고 부의 막대한 불법적 이동으로 지금도 세계의 특정 지역은 상대적인 풍요와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출처 : https://blackmainstreet.net/never-forget-man-killed-10-million-black-people/

 

식민지 역사 중에서 가장 큰 악행은 벨기에인들이 저지른 일이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2세는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인 국제 아프리카 협회를 만들고 이 협회를 통해서 콩고를 소유하였다. 자선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콩고 전역을 거대한 고무 농장으로 만들고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한 주민은 처형하거나 손, 발, 코를 잘라 처벌했고 이러한 와중에 1,000만 영의 흑인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벨기에인의 인종차별은 유명한데, 지들이 콩고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를 하고 교육을 하고 있을까 싶다. 일본인들은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왜 그러냐는 식인데, 인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과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식민 역사에 대해서는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책을 추천한다.  https://ridibooks.com/books/606001134

 

또한, 저자는 식민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요즘 ‘식민주의는 사실 좋은 것이었다’는 주장이 꽤 거세게 대두되고 있으니 한번 따져보자. 그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피식민국이 받은 수혜, 즉 경제 근대화, 인프라 건설, 과학·의학적 지식 이전, 법치 개념 도입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수혜가 식민국의 횡포로 인한 피해보다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치장해 표현하건, 이는 결국 피식민국이 근본적으로 ‘미개’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자치할 능력도 없고, 진보를 도외시하고, 기술이 낙후되어 보유한 천연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 바보들이 황금을 그냥 깔고 앉아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는 얘기다.

일단 그 주장은 식민화되기 이전 나라들의 상황에 대한 사실이 아닌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몇몇 나라가 역사상 어느 시점에 군사력이 일시적, 우발적으로 우월했다고 하여 그것이 ‘누가 누구를 다스려도 좋다’는 절대적 도덕률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안고 있다.

더군다나 그런 주장에는 무언의 전제가 깔려있으니, 식민화가 되지 않았더라면 피식민국들이 정체 상태에 머물렀으리라는 것. 그리고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 말고는 나라 간에 과학적, 기술적 지식을 교류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화를 겪지 않았더라면 그 나라들이 아직 1600년대쯤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절대 그랬을 리는 없다.

애초에 유럽이 기술 발달을 누리게 된 것도 국가 간 지식 교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부터 생각해보자. 물론 이는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증명할 수 없는 문제로, 식민국도 아니었고 피식민국도 아니었던 나라가 거의 없어서 검증이 어렵다. 거의 유일한 예로 태국이 있긴 하다. 지금 구글에서 찾아보니 태국에도 전기가 잘 들어온다. 그러니 표본 한 개만 놓고 볼 때 일단 그 주장은 개소리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가벼운 문체로 써내려간 책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엇보다 이러한 인간의 흑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이 무섭기까지 하다. 소위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꼭 통찰력이 아니어도 인간으로서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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