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를 가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일본 천황이 메이지 유신 때 교토에서 도쿄로 옮기기 전까지 교토는 약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도시입니다. 일본의 중요한 문화, 관광 도시로서 전통 사찰과 신사, 일본 전통 정원 등의 수많은 역사적 유적이 있는 도시이면서 마이코와 게이코(게이샤)가 활동하는 기온 거리, 전통적인 화과자와 교토 요리 등 일본 전통 문화로도 유명한 도시입니다.
이 책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환자들과 마주하는 한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죽음과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교토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내과 의사 마치 데쓰로를 통해, 작가는 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죽음과 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무겁지 않지만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 데쓰로가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 환자들이 남은 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깁니다. "설령 병이 낫지 않아도, 남겨진 시간이 짧아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스피노자의 사상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데쓰로 선생은 의과대학에서 의국생활을 할 때도 의과 서적 보다는 어려운 철학책을 읽었는데,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스피노자의 철학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이런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스피노자가 재미있는 점은 인간의 노력을 긍정한 데 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문 중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힘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서두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에게는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전합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이 나오는 이야기여서 무겁고 힘이 들어갈 것 같지만 오히려 교토의 잔잔한 풍경과 주인공 데쓰로 선생이 좋아하는 전통 과자와 떡 이야기가 섞이면서 오히려 잔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듭니다.
작품은 화려한 의학적 기적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진료실의 모습과 환자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서두르지 말라"는 데쓰로의 말처럼,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교토의 아름다운 풍경과 화과자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계절마다 변화하는 교토의 모습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화과자는 삶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전합니다. 소설 속에서 설명하는 곳을 모두 가보지는 않았지만 글을 읽다가 보면 나도 주인공과 함께 교토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들어서 교토에서 느꼈던 도시 답지 않은 잔잔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 의료의 한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사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치유이고 행복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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